<이번 주 원주 클라우드는 클라우드 게시판에 띄운 주제에 남겨주신 댓글들로 키워드를 뽑았습니다.>
참여해주신 분들: 가영, 선화, 차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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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할 수 있는 여유]
1946년,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가 창설되었습니다. 유네스코(UNESCO)라는 줄임말로 더 널리 알려진 국제기구죠. 유네스코는 국가 간 교육·과학·문화 교류를 통해 국제 사회의 협력을 촉진하고, 국제연합(UN) 헌장에서 선언하고 있는 기본적 자유와 인권, 법치, 보편적인 정의 구현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창의도시’는 이러한 유네스코의 다양한 활동 중 하나예요. 도시화의 물결이 거세진 1980년대 대두된 창의도시는 국가 주도의 개발과 경제적 지표 상승에 집중했던 그동안의 도시 정책에서 벗어나, 다양성과 문화 자원을 바탕으로 구성원의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모색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시 발전 모델입니다. 유네스코에서는 영화, 문학, 음악, 공예와 민속예술, 미디어아트, 미식, 디자인 등 7개 분야에서 창의도시를 선정, 이들 간의 교류를 장려하는 ‘창의도시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어요. 2004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를 시작으로 현재 90개국 295개 도시가 창의도시로 지정되었고 우리나라에도 11개의 도시가 있습니다. 원주는 2019년 문학 창의도시로 네트워크에 가입해 ‘셜록홈즈’의 도시 에든버러, 4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더블린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죠.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에는 해당 분야에서 인적 자원과 관련 인프라를 갖추고, 뛰어난 창의성을 발휘하는 도시만이 가입할 수 있습니다. 인적·물적 자산은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아요. 원주 하면 대하소설 『토지』, ‘국민 작사가’라 불렸던 박건호, 시민 주도의 그림책 운동 등 특색 있는 문학적 자원이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창의성은 어떨까요?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창의(創意)’는 ‘새로운 의견을 생각하여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자를 살펴보면, 생각[意]이 비롯한다[創]는 뜻이죠. 조금 더 뜯어서 살펴보면, 창(創)은 좌변인 곳집 창(倉)에서 소리가, 우변의 선칼도방(刂)에서 의미가 온 형성자입니다. 곳집(창고)을 지으려면 가장 먼저 칼[刂]로 목재를 다듬어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비롯하다(처음 만들어지다)’는 의미가 생겨났다고 해요. 재미있는 것은, 이 한자에 ‘비롯하다’뿐만 아니라 ‘다치다’·‘상처’라는 뜻도 있다는 겁니다. 건강한 피부에는 새살이 돋지 않아요. 새살은 칼로 다친 곳, 상처가 난 곳이 아물며 납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것은 먼저 것을 깨트려야만 그 자리에 생겨날 수 있죠.
클라우드에 모인 단어에서도 이런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자유롭게 의견을 내는 도시,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도시, 나이·성별·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는 도시, 거창하지 않아도 곳곳에 재미있는 요소가 많은 도시,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알록달록한 도시. 여러분이 말하는 창의적인 도시는 결국 기존의 권위와 효율에서 탈피하는 모습입니다. 아마 모든 사람이 답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것을 어떻게 현실로, 일상으로 가져올 것인가가 문제겠죠.
창의적이기 위해서, 우리는 언제든 ‘깨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회복할 수 있는 에너지, 즉 회복탄력성이 전제되어야 하고요. 만약 틀리더라도, 실패하더라도 괜찮다는 확신, 물질적·공간적·시간적·심리적 넉넉함, 한 단어로 말하자면 ‘여유’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그렇지만 지금 주변을 보면 다들 그다지 여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한창 유행했던 신조어들을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져요. 가격 대비 성능을 나타내는 ‘가성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꿈꾸는 ‘소확행’ 등의 단어는 실패를 줄이려는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잖아요. 하다못해 음식점을 선택할 때도, 사소한 제품을 고를 때도 별점과 리뷰를 샅샅이 확인하는 세상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여기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안정을 추구하는 건 당연한 귀결이고, 원인을 고려하지 않으면서 여유를 가지라고 강요하는 건 결국 또 다른 종류의 억압일 뿐이니까요.
그러므로 저는 일단, 우리 모두가 맛있는 것을 먹고,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잠을 푹 자고,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자주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음에 위안을 주는 친구가 한둘 있다면 좋겠습니다.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강원 행복한 도민 심리지원 서비스(https://www.provin.gangwon.kr/gw/portal/sub07_02_01_02)’ 같은 것을 신청해 정기적으로 심리상담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건강해지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불쾌하게 끼어든 앞차에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지나가다 문득 들어간 식당의 음식이 형편없어도 새로운 메뉴를 주문하는 데 마음 쓰지 않게 될 겁니다. 관심 가는 복지단체나 정치인에게 매달 몇 천 원 후원을 시작할 수도 있고요. 그럴듯한 책을 구입해 매일 몇 장씩 꾸준히 읽어보려 노력하거나, 이따금 아마추어의 공연과 전시에 찾아가 기꺼이 입장료를 지불할 수도 있겠죠. 우리는 차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겁니다. 그렇게 자잘한 여유들이 자꾸 모이다 보면, 비로소 우리가 사는 곳도 창의도시라 불릴 수 있지 않을까요.
새보미야 |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______한 사람. 프로 백수라 불리곤 하는 프리랜서로, 주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듭니다.
참여해주신 분들: 가영, 선화, 차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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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할 수 있는 여유]
1946년,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가 창설되었습니다. 유네스코(UNESCO)라는 줄임말로 더 널리 알려진 국제기구죠. 유네스코는 국가 간 교육·과학·문화 교류를 통해 국제 사회의 협력을 촉진하고, 국제연합(UN) 헌장에서 선언하고 있는 기본적 자유와 인권, 법치, 보편적인 정의 구현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창의도시’는 이러한 유네스코의 다양한 활동 중 하나예요. 도시화의 물결이 거세진 1980년대 대두된 창의도시는 국가 주도의 개발과 경제적 지표 상승에 집중했던 그동안의 도시 정책에서 벗어나, 다양성과 문화 자원을 바탕으로 구성원의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모색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시 발전 모델입니다. 유네스코에서는 영화, 문학, 음악, 공예와 민속예술, 미디어아트, 미식, 디자인 등 7개 분야에서 창의도시를 선정, 이들 간의 교류를 장려하는 ‘창의도시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어요. 2004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를 시작으로 현재 90개국 295개 도시가 창의도시로 지정되었고 우리나라에도 11개의 도시가 있습니다. 원주는 2019년 문학 창의도시로 네트워크에 가입해 ‘셜록홈즈’의 도시 에든버러, 4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더블린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죠.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에는 해당 분야에서 인적 자원과 관련 인프라를 갖추고, 뛰어난 창의성을 발휘하는 도시만이 가입할 수 있습니다. 인적·물적 자산은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아요. 원주 하면 대하소설 『토지』, ‘국민 작사가’라 불렸던 박건호, 시민 주도의 그림책 운동 등 특색 있는 문학적 자원이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창의성은 어떨까요?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창의(創意)’는 ‘새로운 의견을 생각하여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자를 살펴보면, 생각[意]이 비롯한다[創]는 뜻이죠. 조금 더 뜯어서 살펴보면, 창(創)은 좌변인 곳집 창(倉)에서 소리가, 우변의 선칼도방(刂)에서 의미가 온 형성자입니다. 곳집(창고)을 지으려면 가장 먼저 칼[刂]로 목재를 다듬어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비롯하다(처음 만들어지다)’는 의미가 생겨났다고 해요. 재미있는 것은, 이 한자에 ‘비롯하다’뿐만 아니라 ‘다치다’·‘상처’라는 뜻도 있다는 겁니다. 건강한 피부에는 새살이 돋지 않아요. 새살은 칼로 다친 곳, 상처가 난 곳이 아물며 납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것은 먼저 것을 깨트려야만 그 자리에 생겨날 수 있죠.
클라우드에 모인 단어에서도 이런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자유롭게 의견을 내는 도시,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도시, 나이·성별·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는 도시, 거창하지 않아도 곳곳에 재미있는 요소가 많은 도시,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알록달록한 도시. 여러분이 말하는 창의적인 도시는 결국 기존의 권위와 효율에서 탈피하는 모습입니다. 아마 모든 사람이 답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것을 어떻게 현실로, 일상으로 가져올 것인가가 문제겠죠.
창의적이기 위해서, 우리는 언제든 ‘깨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회복할 수 있는 에너지, 즉 회복탄력성이 전제되어야 하고요. 만약 틀리더라도, 실패하더라도 괜찮다는 확신, 물질적·공간적·시간적·심리적 넉넉함, 한 단어로 말하자면 ‘여유’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그렇지만 지금 주변을 보면 다들 그다지 여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한창 유행했던 신조어들을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져요. 가격 대비 성능을 나타내는 ‘가성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꿈꾸는 ‘소확행’ 등의 단어는 실패를 줄이려는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잖아요. 하다못해 음식점을 선택할 때도, 사소한 제품을 고를 때도 별점과 리뷰를 샅샅이 확인하는 세상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여기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안정을 추구하는 건 당연한 귀결이고, 원인을 고려하지 않으면서 여유를 가지라고 강요하는 건 결국 또 다른 종류의 억압일 뿐이니까요.
그러므로 저는 일단, 우리 모두가 맛있는 것을 먹고,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잠을 푹 자고,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자주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음에 위안을 주는 친구가 한둘 있다면 좋겠습니다.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강원 행복한 도민 심리지원 서비스(https://www.provin.gangwon.kr/gw/portal/sub07_02_01_02)’ 같은 것을 신청해 정기적으로 심리상담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건강해지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불쾌하게 끼어든 앞차에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지나가다 문득 들어간 식당의 음식이 형편없어도 새로운 메뉴를 주문하는 데 마음 쓰지 않게 될 겁니다. 관심 가는 복지단체나 정치인에게 매달 몇 천 원 후원을 시작할 수도 있고요. 그럴듯한 책을 구입해 매일 몇 장씩 꾸준히 읽어보려 노력하거나, 이따금 아마추어의 공연과 전시에 찾아가 기꺼이 입장료를 지불할 수도 있겠죠. 우리는 차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겁니다. 그렇게 자잘한 여유들이 자꾸 모이다 보면, 비로소 우리가 사는 곳도 창의도시라 불릴 수 있지 않을까요.
새보미야 |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______한 사람. 프로 백수라 불리곤 하는 프리랜서로, 주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듭니다.